대구 지하철 참사 범인 사진 문자 사고 정리
대구 지하철 참사 범인 사진 문자 사고 정리
☞ 사건개요
2003년 2월 18일
오전 9시 53분경 발생
사망자 192명
실종 6명
부상 151명
범인 김대한에 의해 일어난 방화
사건으로 2000년대 이후 최악의
참사 중 하나입니다.
사고가 왜 났는지 지금부터 디테일
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.
☞ 사건의 진행
범인이 방화를 위해 주유소에서
약 8000원 어치 석유를 구입한 뒤
자히철에 탑승합니다.
이후 라이터를 통해 방화를 시도했으며
자신의 옷에도 불이 붙게 됩니다.
결국 어~ 하면서 불붙은 기름 통을
바닥에 패대기 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
전동차가 불길에 휩싸이게 됩니다.
불에 쉽싸인 1079열차는 당시 정차중
이었고 출입문을 통해 사람들은 대피를
할 수 있었지만 반대편에서 도착한
1080열차에 불이 옮겨 붙습니다.
☞ 발암의 시작
1080 기관사는 마스터키를 빼서 탈출
하였고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히게 됩니다.
지금은 수동으로 지하철 문을 여는것이
홍보가 되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중
하나이지만 당시에는 대다수가 몰랐습니다.
화재는 급속도로 커져갔고 방화셔터가
닫히며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굉장히
많았습니다.
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건
탈출방법을 알고 있었던 소수의 승객들
덕분에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.
☞ 대구 지하철 참사 문자
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
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을것
같습니다.
☞ 대구 지하철 참사 범인
범인 김대한은 사고전 이미 뇌졸증으로
한번 쓰러져 지적장애 2급은 물론 심각한
신체적 장애가 있는 상태였습니다.
결론은 우을증에 의한 정신질환의 악화
및 판단력 상실이라는 병이 있었고
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
2004년 8월 호흡곤란으로 죽습니다.
어처구니 없는건 그런 사태를 만들어
놓고 셀프로 병원으로가 치료를 받다
검거가 되었는데요 확실한건 정상은
아니라는 것입니다.
☞ 사고 이후 변화
사실 우리는 이 사고를 바탕으로
조금 더 안전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
있게 되었습니다.
우선 당시에 상당히 많았던 테마열차
등이 모두 사라졌으며 화재에 취약한
것이 원인이었습니다.
비상시 문 개방방법에 대한 위치도
수정되며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루어
졌으며 방독면을 포함한 산소통 손전등
등이 의무적으로 비치되게 되었습니다.
☞ 사고의 후유증
살아남은 사람들은 괜찮을까?
라는 생각으로 찾아본 결과 역시
괜찮을리 없었습니다.
우선 가스노출에 의해 평생을
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합니다.
유독성분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
것은 피부에 화상자국도 생겼으며
신체적으로 아무리 멀쩡하다해도
큰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
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으며
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친구 , 지인들은
소중한 사람을 잃은 만큼 아직도
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.
아직도 대구 지하철 자체를 타지
않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
그 당시 사고의 여파가 얼마나
큰지 알 수 있습니다.
☞ 중앙로역 추모공간
안쪽에는 사고 현장의 부분이
그대로 보존중이며 추모할 수 있는
공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.
남아있는 사람들의 슬픔
그들의 상실감이 고스란히
담겨져 있는 곳입니다.